my very first solo exhibition


<<Chung Yean Cho ‘s Solo Exhibition: ‘Afourium’ artist note>>

Written by Chung Yean Cho

The basic idea for the project was originated from Tactical Media Network’s A4 project2006, which is now lying in ambush. The project was preceded in the course that one hacks into an enterprise or organization’s inner part utilizing reused papers and re-possesses the information. This exhibition stands on extension of individual consideration of the issues. I clearly remember of A4 papers, thrown out from a window of a building and flying in the air one summer day. The papers were floating in the air as if they portrayed something more than things written. There were also people’s speaking as background. The people seemed not to capture the person who had thrown away the paper while busily caught the floating papers. The speaking person could have been deployed with the A4papers in the air. Anyway, people hang around with these crumpled papers and moderate in a file form and save them in a cloth. The papers sometimes play the role of covering burning sunlight. They are extended.

All information in ordinary life becomes moderated in A4risation form. They at the same time modulated and reformed in order to be regularly loaded and communicated. The basic size of A4 paper, regulated in mechanical typewriter in the 20th century is defined in a ratio.

 

Hence, if one folds or cuts in two pieces in a method of self-reprinting, a side of smaller rectangular repeats to paralyze to a minor side of the bigger (prior) rectangular. It discovers social and spatial algorithms structure as if it includes geometrical fractal’s continual self similarity.

Various aspects of city life would be collected, moderated and re-intermediated into A4. I suggest an assumption that could be a certain point for understanding new media genealogy’s complexity. A4 paper becomes the imagined intervention with physicality as a paper. The paper is defined as module or condition, regulation in a modernistic system aiming for efficiency.

We simulate diverse things in a paper form. They could be a paper doll, a paper airplane, a paper house, a paper tiger, a paper cloth and so on. The papers are organized and formed into a symbol with language. At this point, one needs to focus on phase difference of information. The collected information is gotten folded, overlapped, flapped, creased and rolled up. Could anyone clearly know whether his body and consciousness are rolled up or simply the papers are? Indexical plane information approaches to dramatic moment at a certain point. The information never approaches to the signified and leaps over signifying blocks for a new takeoff.

Therefore, the exhibition deals with A4 paper as a basic organization of information itself. The main focus in this project is the course of remediation, defined through impossibility of sorting among mixture of intermediation and reality, overcoming a dichotomy diagram that is called ‘imagination of reality’ or ‘realistic representation of imagination’.

by yellowsub | 2009/06/29 07:42 | 섬들... | 트랙백 | 덧글(2)

작가노트

A4rium

프로젝트 구상의 시작은 지금은 잠복근무 중인 텍티컬미디어네트워크의 A4프로젝트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보의 기본단위로서의 A4에 대한 뉴미디어적 접근으로 기업이나 기관 내부의 정보 부스러기인 이면지를 해킹하고 그 정보를 재전유하는 기획으로 진행되었었다. 이번 전시는 그때의 이슈들에 대한 개인적인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전단지, 아니 내 기억에 또렷이 남는 한 여름날 빌딩 창 밖으로 던져져 부서지던 A4들, 담겨진 내용 이상을 그려내듯 공중에서 부유하였고 배경으로 흐르던 몇 마디의 발언들,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사각 종이들을 잡느라 던진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발언자는 A4와 함께 공중에서 산개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사람들은 팔랑팔랑 구겨진 A4를 들고 다니다 나름 자신들만의 화일 방식으로 접어 변환시켜 옷안에 넣고 저장한다. 가끔 그것은 뜨거운 유월의 햇볕을 막아주는 가리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확장된다. 


모든 일상의 정보들은 A4risation(화)된다. 그리고 동시에 모듈화되고 변환되어 일정하게 적재되고 소통된다. 20세기 초 수동식(신체의 행동양식 안에서 규정된) 타이프라이터 규격에 맞춘 A4의 기본 사이즈는  비율로 정의되고 자기 복제성 혹은 동일성의 방식으로 종이를 반으로 접거나 자르면 보다 작은 크기의 크기로 각각 이전 크기의 종이의 짧은 변에 평행하도록 반복된다.  마치 기학학적 프렉탈의 연속적인 자기 유사성을 담았던 것처럼 사회적, 공간적 알고리즘 체계를 드러낸다. 


우리가 경험한 도시적 삶의 다양한 양태들이 A4로 수렴되고 치환되어 재매개되고있지 않을까? 그것이 뉴미디어 계보학의 복잡성을 파악하는 어떤 한 지점일 수 있겠다라는 가정을 세워본다.


모더니즘적 효율성체계안에서 모듈 혹은 기준, 규정으로 정의된 A4는 종이라는 물질성을 가지면서 가상의 매개가 된다. 우린 많은 것들을 종이로 시뮬레이션한다.  종이인형, 종이비행기, 종이집, 종이호랑이, 종이옷 등등.  언어와 함께 종이들도 표상으로 조직된다. 이때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보의 위상학적인 변화들이다. 수렴된 정보들은 접히고 겹치고 펄럭이고 주름지며 돌돌 말린다. 그때 그것을 접고 있는 몸과 의식이 말리는 것인지 종이가 말리고 접히는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평면적인 정보가 가졌던 지표성은 어느 순간 극적인 국면을 맞는다. 이때 정보는 기의에 절대로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는 기표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도약을 한다. 


정보매체, 아니 정보의 자체의 기본단위로서 A4와 가실재의 물질성을 가진 종이가 실재의 가상이나 가상의 실재적 재현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 매개와 실재의 분리 불가능성을 통해 매개 행위가 또 다른, 많은 다른 매개와 의존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재매개화(remediation)의 과정이 이번 프로젝트의 주된 관심이고자 한다. 



by yellowsub | 2009/06/23 08:14 | 섬들... | 트랙백 | 덧글(0)

개인전 준비를 위한 방



7월초에 있을 개인전 작업을 위해 방을 싹 비웠다. 애들방에 물건들을 몰아넣었다.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어떡하겠는가 작업실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작업공간을 만들었다. 주로 영상작업이니 설치를 위한 기본 프로젝션만 놓고 이래저래 전시상황을 예상하며 작업할 수 밖에 없다. 전시때는 여기서의 세팅을 그대로 옮겨놓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좁은 집이지만 한 공간을 텅 비워놓는 것도 집을 이상하게 여유있게 쓰는(누군가의 희생으로) 방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에 차한잔 하는 빈 공간으로 말이다.

갤러리 관장이 7월, 10월중에 선택하라고 해서 대뜸 7월에 한다고 했다. 은근히 후회지만 10월에 한다고 그닥 상황이 더 여유롭게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갑자기 여러 일이 겹치는 통에 개인전을 이렇게 준비해도 되나 아쉬움이 인다.

A4프로젝트다. 예전 텍티컬미디어그룹의 기획전에서 잠깐 고민했던 부분인데... 하나의 정보양식으로 A4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픽셀처럼 A4는 우리 삶의 정보양식의 가장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종이라는 가실재의 물질성. 생각해보라. 우리는 종이접기하면서 세상을 시뮬레이터한다. 가상의 어떤 것을 종이로 한번씩 시뮬레이션해본다는 것. 가급적 컴퓨터 안쓰고 사이버네틱의 시뮬라크르를 전시에 전해 옮기려하다보니 가장 주변의 것으로 눈이 갔다.

어쨌거나 7월4일 첫 개인전은 분명히 열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by yellowsub | 2009/06/08 00:27 | 섬들... | 트랙백 | 덧글(5)

트위터, 트위팅, 한줄 글쓰기


따지고 보면 주신부님때문에 블로깅을 시작했던 것이다. 오늘 갑자기 또 주신부님이 내게 트위터를 소개해주셨고 이렇게 후다닥 또 트위팅을 시작하게 되었다. 역시 소통이, 소통에 대한 욕망이 뉴미디어를 이끄는 것이다. 그게 전제다.

트위팅의 글쓰기방식은 일정한, 겨우 몇 문장(140획)외에는 입력(업데이트)할 수 없게 되었고 "What are you doing?"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글을 올리게 되있다. 그러니 짧은 몇 생각들을 빠르게 올리는 메모장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다. 누구를 상정하지도 그렇다고 내게 하는 말도 아닌 선언이 되거나 질문들, 잡념들인데... 그게 참 재미있다. 생각들 족족 담아내고 빨아대는 미디어, 아마 뇌를 대신하는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질문아닌 잡념아닌 안내공지를 몇개 올리면서 트위팅을 시작했다.

첫 한줄 쓰기는 힘들지만 한 장 쓰기는 쉽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그 가장 힘든 일들을 벗들과 나누게 될지도 모르겠다.. 걱정은 이게 미제라 기본적인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관심있는 많은 블로거들은 twitter 로 함 빠져보시라!!

by yellowsub | 2009/06/03 15:58 | 섬들... | 트랙백(1) | 덧글(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수업시간에 들어가자마자 미술원 학생이 묻는다. "선생님 이제 저희 학교는 어떻게 되는건가요?" 난 거의 기다리지않고 " 뭐 그런걸 신경쓰냐 너희 일이나 열심히 해... 흔들리지 말고" 라고 대답했다. 새정권 입맛에 맞춰 자기 사람심기하는 문광부의 모습은 유치하고 어이가 없다. 표적감사. 분명하다. 30억이상 쓴 통섭연구에 별 성과가 없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한두해 걸쳐서 나올 수 있는 것인가? 예산으로 기자재 사기도 바빴던 한해였던거 같은데 무슨 실험이나 실행의 과정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지원도 끊어놓고선.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그 과정대로라면 결과라고 기대하기도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서 내가 최근의 한.예.종을 둘러싼 문제를 보는 관점은 다르다. 그냥 보기엔 마치 문광부가 열심히 하는 예술인들 뒤통수 치는 것으로 밖에는 안보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전부가 다 정치게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말하면 이번 사태엔 사실 어느 편에도 진정성을 담고 있지 못하다. 결국은 다 지는 게임이거나 혹은 아무 성과도 없이 상처만 남는 전쟁이 되고 말것이다. 공격하는 쪽이나 치받는 쪽이나 말이다. 언제나 불쌍한 건 어른들 밥그릇 싸움가운데에서 치이는 학생들 뿐이다.

서로 듣기좋은 예술교육의 방향을 앞세우지만 왜 이럴때만 갑자기 열불을 내시는지 한심하다. 한예종의 몇몇 거론되는 교수들은 10년전에도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다. (난 그때 여름 당신들이 한 일을 기억한다.) 그 때는 그 때에 맞는 멀티미디어, 뉴미디어라며 듣기좋은 소리로 자리보전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통섭이라는 단어에 기생하면서 산다. 실없는 이론과가 살아남는 방법은 통섭이라고 떠들면서 다른데 붙어먹어야 하기때문이다. (좌파간판을 단 못된 사람들은 분명있다.) 10년전에도 통섭은 이미 있었다. 학생들끼리. 애초에 통섭하겠다고 만든 예술학교면서 통섭원이라니 그럼 예술학교 안에 예술원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은가?

한예종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위가 구성되고 학생, 교수들이 도서관앞에 모이게 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난 거기서 예술교육의 침해라는 이름으로 다시 그 사람들이 학생들 앞세워 놓고 뒤에 숨어 자리보전하게 되는, 그 지경을 위해 사람들이 시간들여 모이게 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다. 오히려 이번 기회가 한예종 스스로의 자리찾기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물론 그렇다고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하지만 10년전 대자보 쓰면서 막막해하던 내게 한 분이 해주셨던 말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이루어진다." 라고.

by yellowsub | 2009/05/22 02:11 | 섬들... | 트랙백 | 덧글(0)

부기부기



어린이날 아침 광란의 부기부기대결!! 최신 3D영화보기 입체고글을 착용한 하이테크룩 연출!!

by yellowsub | 2009/05/06 00:34 | 우리 성원이와 사과... | 트랙백 | 덧글(1)

분당교회 10주년 문장


분당교회 10주년을 맞아 로고디자인을 맡아 진행했던 디자이너로써 간략하게 경과와 로고에 대한 기본생각을 나누고자 이렇게 몇 자 올립니다.

이번 10주년 로고디자인은 큰 틀에서 기존의 교구 문장도안을 참고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쉽게도 문장에 대한  정리된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숨은 디테일에 대한 해석상의 요구들은 뒤로하고 전체적인 상징성을 강조하여 디자인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가지 안들 중 현재 제시된 안이 교회식구들께 더 많은 호응을 얻어 선택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의미는 보시는 바대로 방주, 주교관, 방패, 십자가, 부활하신 예수님, 빛, 하느님과의 일치를 상징합니다.

몇 가지 논란거리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분당교회에 대한 표기, 영문표기 중에 the의 첨부여부, 단순한 칼라, 표어 뒤의 작은 십자가, 한정적인 연도표기 등이 그렇습니다. 우선, 보통의 외국교회처럼 영문표기는 자연스럽게 개교회의 수호성인을 따르지만 분당교회는 정해지지 않아 그대로 현재 영문표기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정관사를 표기하지 않은 것은 우선은 문장안의 표기가 로고에 가깝고 최근 추세가 정관사에 대해 까다롭지 않으며, 글자수의 좌우조화와 균형을 맞출 수 밖에 없는 디자인적인 한계도 있었다는 것을 이해해주십시요. 또 교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닌 10주년을 기념하는 분당교회에 한정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겠습니다. 표기 마지막의 작은 원형 십자가 또한 표기 앞과 뒤에 다 있어야 했다면 정관사처럼 디자인적인 허용이라고 받아주시고(물론 디자인이 전부가 아니지만^^) 나름대로 비슷한 외국의 몇 가지 작은 십자가 활용의 사례를 참조하였음을 밝힙니다.

그 외의 교구문장에서 더 나아가 새롭고 더 참신하며, 분당교회의 앞으로 100년을 상징하는 디자인을 자유롭게 상상해봄이 어땠을까라는 고마운 격려의 말씀도 계셨지만, 죄송스럽게도^^ 부족한 디자이너로서 일단은 여기까지라도 진행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더 좋은 의견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교구와 관구에서도 로고의 정립에 대한 어떤 형태로의 도전이 생기기를 기대해봅니다.

by yellowsub | 2009/04/14 21:54 | 성공회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교회건물없는 교회


무작정 웹검색창에 '교회건물없는 교회'를 쳤다. 최근 10주년을 돌아보면서 분당교회건축에 대한 열의가 새롭게 대두되는 상황이고 개인적으로 다른 대안으로 교회건물이 없는 네트워크형 교회에 대한 다른 교단의 모습을 확인해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장 '높은 뜻 숭의교회', 밥퍼공동체인 '다일교회', '분당우리교회', '너머서교회', '언덕교회', '광염교회', '주님의 교회' 등등이 있었다. 그 중에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특히 높은 뜻 숭의교회였는데 교회이름도 모여지는 장소를 빌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광성고등학교 강당을 빌리면 높은뜻 광성교회였고, 정의여고를 빌리면 높은뜻 정의교회였다. 그렇게 하늘교회, 푸른교회가 더 있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4세기초까지 초기교회가 가졌던 교회건물없는 가정교회의 역사에 대해 더 언급할려고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미 저렇게 개신교안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고 대안적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외형적으로 '부흥'했으며 가난한 개척교회의 '한때'이상의 교회형태로 선택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편으론 성공회가 대안이 될 수 있을꺼다라는 생각에도 변화를 주었다. 개신교가 가진 많은 병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분명히 그 안에서 진화하고 있다. 그들의 방향이 틀렸다고 혹은 그들이 그것을 깨고 나오기 힘들거야라고 말하지만 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쫓겨나와 '길거리예배'까지 얘기하는 그들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길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또 다른 위선으로 덧쒸워질 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성공회모습을 통해서 그들이 바뀌진 않을거란 말이다. 

성공회를 돌아보면 교회신문이던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서건 사실 아무도 교회의 대안적 모습으로 '교회건물없는 교회'를 언급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주일학교를 위해 합기도장을 빌려 매트리스에서 아이들을 뛰어놀게 했으면서도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나 보다. 대한성공회는 대성당밖에는 없다. 다들 그 성당모양을 따라 기형적인 짝퉁건물을 짓고, 빚에 허덕이고, 인테리어를 장식하면서 부동산 전문가나 독지가의 출현만을 기대하고 있다. 자랑스러운(자랑하는) 성공회적인 믿음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의 근원이 의심될 수 밖에 없다.  

10주년 행사를 위해 간담회를 하고 교회어른과 돌아오는 길에 교회건물없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렸더니 아주 긍정적으로 그런 대안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마음을 여셨다. 난 그것에서 희망을 읽는다. 그리고 하루빨리 성공회안에서 정말로 실천적이고 생산적인 교회의 모습에 대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분당교회가 그것에 중심이 되기를 또한 기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당교회는 돈으로 절대로(혹은 거의) 분당지역에 교회건물을 살(지을) 수 없는 조건, 아니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by yellowsub | 2009/04/01 17:03 | 교회건축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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