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 그림2


정확히 말하자면 난 백현진의 그림에 동의하지 않는다기 보다, 그의 그림을 둘러싼 해괴한 평들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다. 백현진은 아마도 그런 언어들에 갇혀있는 맹수같은 사람인지 모르겠다. 난 백현진이 자신의 재능을 저주하는듯 보인다. 익숙해진 붓질은 되돌리고 싶어도 절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덩치가 커졌고 턱에 수염이 찼어도 저렇게 꼼꼼하고, 알록달록하게 이쁜 마음을 가진 소녀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궁금해졌다. 백현진의 삶 어디선가에서 자기를 못받아들이게 되는, 그렇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는지. 그냥 내 생각이다. 차라리 백현진은 그림보다는 사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찍힌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간극에서 보여지는 무의식적인 틈에서 자신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해서다. 그리고 제발 자기를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과 놀지 말았으면 한다. 아님 자기가 그러고 다니는지도... 

by yellowsub | 2011/12/05 22:05 | 섬들... | 트랙백 | 덧글(0)

지난 여름 독일 풍경




아마도 돌아오는 ICE안에서 바라 본 뮌헨에서 푸랑크푸르트 사이의 전원 풍경. 한참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by yellowsub | 2011/11/25 18:52 | 섬들... | 트랙백 | 덧글(0)

백현진 그림

나가수에서 자우림과 듀엣 미션을 하던 백현진의 그림이다. 좋다. 영리하다. 아라리오가 탐낼만 하다. 그나저나 네오룩의 이선영이라는 여자의 백현진 그림 평은 해괴하다. 베이컨풍의 분위기때문인지 들뤼즈를 들먹이며 쉬운 얘기를 어렵게 쓴 건 그렇다 치더라도. 백현진 그림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망가나 디즈니 풍의 디테일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억지스럽다. 뭐라 쓰던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백현진이 쓰게 했는지가 궁금해서다. 만약 그렇다면 실망이다. 그의 그림이 지향하는 모든 표지들이 회화가 아니라 수작(酌)으로 절하되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롭게 흐트러져 있는 것 같지만 붓질 하나하나가 아주 정교하고 계산되어 있어서 이동기나 김형구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영리하다고 느낀다. 기관없는 신체를 언급한 평론가가 뻘줌할지도... 흥미로와서 썼는데 쓰는 도중에 좀 찜찜해졌다.ㅋ 그의 노래만큼 그림이 자유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그림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노래로 토해내는 듯 하다.





by yellowsub | 2011/11/25 09:54 | 섬들... | 트랙백 | 덧글(0)

자취


부폐해서 없어진 새들에게 남은 건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사람들의 플라스틱이다. 슬프게 아름답다. 

by yellowsub | 2011/10/17 17:11 | 트랙백 | 덧글(0)

성우's drawing

막내 성우가 그린 그림이다. 엄마, 외할머니, 공룡이다. 6살아이가 그린 그림인데...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도 한번도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찰을 통해 얻은 코, 옷장식 등의 세밀한 디테일과 그 표현이다. 열심히 하루 반나절을 혀내놓고 그림만 그리는 성우는 나중에 뭐가 될까? 


by yellowsub | 2011/10/17 17:00 | 트랙백 | 덧글(1)

규모의 교회




엊그제 교회에서 성공회와 고딕을 주제로 간단한 강의를 했지만 사실 한국 성공회의 건축물에 대한 비판을 밑에 깔고 있다. 오늘 문득 보게 된 호주의 한 건축사무소가 지은 시골교회의 사진이다. 규모있게 주변을 거스르지 않고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는 건물이다. 재료도 크게 비싸보이지 않아 요즘 유행인 한국의 땅콩집을 연상케한다. 아마 1-2달이면 짓는 건축물일 것이다. 카톨릭 교회이지 싶다. 14처를 저렇게 앙징맞게 위치시킬 수 있는 공동체의 센스를 보라. 성공회가 이런 모델로 전체 교회건축 매뉴얼을 만든다면 좋은 본보기도 될 듯싶다. 비용도 토지비용을 빼면 그렇게 많이 들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꼭 CI를 그래픽요소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벌써 땅콩집은 대안거주로서 그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 걸 봐서는 교회 정체성을 드러내는데에 상당히 고려해볼만 하겠다.

출처 : http://kud.com.au/intro.php

by yellowsub | 2011/06/07 12:04 | 교회건축이야기 | 트랙백 | 덧글(5)

독일여행


며칠 전 짧게 독일출장을 다녀왔다. 처음가본 베를린을 거닐다 문득 문득 마주치던 풍경들을 몇 개 담았다. 베를린은 언젠가 다시 차근차근이 다시 오겠다고 결심한 곳이었다. 맨 위는 홀로코스터 위령비들었고, 다음이 포츠담 광장의 베를린장벽의 자취들이었다. 마지막 사진은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에서 표본실이다. 악소리 나는 전시, 아니 현실이다.  

by yellowsub | 2011/05/20 17:49 | 섬들... | 트랙백 | 덧글(0)

눈으로만 봐주세요


강원도 설악산 근처의 세트촬영장. 관광지에서 관광객을 맞는 마네킹들... 멋지다.

by yellowsub | 2011/04/21 20:53 | 트랙백 | 덧글(1)

여름날의 추억


생쇼는 계속 이어진다.

by yellowsub | 2011/04/21 20:52 | 우리 성원이와 성우 | 트랙백 | 덧글(0)

성공회는 고딕이다



질서와 비례를 중시하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사람들은 우뚝 솟구쳐서는 온갖 장식과 넝쿨로 과하게 장식되어 무질서해보이던 이 외래 양식을 무식한 고트(Goth)의 것이라고 천시했습니다. 12-13세기 북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고딕양식의 역사는 사실 자연과 그리스도교의 만남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딕은 대자연을 닮으려고 하는 양식적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인구의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당시 유럽의 상황에서 자연은 그 자체로 신보다 더 우월한 존재였겠다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농민들 마음 깊은 곳엔 이미 고대로 부터 땅에 뿌리를 둔 지모신을 섬기는 민간싱앙이 깊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시작된 대규모 개간으로 인한 자연(숲)의 소멸과 함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면서 여전히 지모 숭배의 마음을 가졌던 농민들을 그리스도교가 끌어안기위해서 교회는 성모신앙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킵니다. 당시의 프랑스와 영국, 곳곳에서 도시에 자리잡은 고딕 대성당의 이름들이 노트르담(Notre-Dame)이나 아워레이디(Our Lady), 성모 예배당으로 건립되었다는 것은 보편적인 차원에서 성모 마리아를 지모신인 대지의 어머니, 자연신과 동일시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샤르트르 대성당의 바닥을 파내려가다보면 켈트인들이 신앙했던 성소와 일치한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순환되고 부활하면서 생산을 재개하는 대자연과 자연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했고 그리스도교의 여러 상징들과 조우하면서 고딕 성당안에 녹아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활발하게 번성하던 고딕양식은 15-17세기의 프랑스 고전주의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를 거치면서 위축됩니다. 애매함보다는 명쾌함을, 복잡함 보다는 단순함을, 일탈보다는 질서를, 과도한 이상보다는 현실의 조화를 존중하던 피렌체의 예술가들에 의해서 비판받습니다. 게다가 종교개혁 당시의 루터의 시각엔 종소리에, 향로, 촛대, 고상, 중얼거림(찬트), 미사복, 오르간과 더불어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대성당을 불필요하고 불순하게 까지 보았던 것은 당연하게 보입니다.

그 후 고딕의 신화가 부활하기 시작했고 재평가가 가장 먼저 활발하게 시작된 곳이 영국이라고 합니다. 그 배경에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정복왕 윌리엄과 루이 14세와 결탁해 의회를 무시하고 절대왕정을 실현하려던 제임스 2세에 대한 반발과 함께 일어난 명예혁명과 그 이후의 제한된 왕정, 의회제 민주주의의 근거로서, 숲에 살면서 부족간 합의제를 가졌던 색슨인들의 정치형태를 이상화한 고딕신화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명예혁명의 성취를 색슨인의 왕국, 다시 게르마니아의 숲으로, 더 나아가 고트족의 숲까지 거슬러 올라가 되찾고자 하는 복고적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정치적 자유주의, 중앙의 획일적 통제를 벗어난 지방의 자유를 상징하는 컨트리 하우스와 자연주의 정원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베르사이유 궁전과 대비되는 울창하면서 고대의 폐허가 자연스럽게 노출된 영국풍의 정원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의 본질은 이성이었고 균형과 조화, 좌우대칭이 가지는 불변성과 보편성을 펼치는 고전주의 자연관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자연의 본질이고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하는 가변성과 장소에 의해 달라진다는 특수성을 가진 고딕신화로 대치됩니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모습을 보면 오랜 건립기간을 따라 한쪽 탑은 로마네스크 말기양식(고딕 초기양식), 다른 왼쪽 탑은 고딕말기양식으로 만들어져 새로운 탑을 옛 탑에 맞추려 하지 않았지만 둘 다 고딕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긍정하고 각 시대가 지닌 표정을 그대로 새겨내려고 하는 것이죠.

단순히 고딕신화를 건축에만 한정시킬수 없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르더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보편 신앙에 대항한 영국의 사상적 흐름을 주목하면서 세익스피어를 재평가합니다. 고전주의에서 일탈해 풍토의 다양한 요소를 하나의 훌륭한 전체로 정리했다고 하고 사건을 본 그대로 받아들인 상태에서 창의성을 가지고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전체를 창조해냈다고 말합니다. 마치 게르마니아 숲을 거닐듯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경이, 환상, 미지와 조우하게 되는 기대와 두려움, 떨림, 유머가 고딕적 풍모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고딕이라는 단어가 지시하는 애매함 혼란, 부자연, 뒤섞임, 짜깁기, 지나친 장식 등으로 비난 받던 시기가 있었지만 모든 존재가 자기의 타자와 인접해 있고 그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 항상 다른 종류의 것들에게 자기 몸을 열어 주는 열린 태도가 고딕의 정수라고 볼 때, 성공회적 믿음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의례히 한국 성공회내의 많은 분들이 성공회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로마네스크 양식의 정동대성당을 쉽게 떠올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 영향때문인지는 몰라도 몇몇 개교회의 교회 신축사업 때에 대성당을 흉내내고 장식을 그대로 조악하게 옮기는 경우를 목격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성공회적이라고 무심하게 말합니다. 성공회가 고딕양식을 받아들이라는 의도가 아닙니다. 다른 것에 대한 열린 태도로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넘어 새로움을 바라보는 성공회적 태도를 떠올려 본 것입니다. 거친 제목으로 시작하는 제 글은 일본의 권위있는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한 사카이 다케시 교수의 책<고딕, 불멸의 아름다움>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조충연 프란시스)

by yellowsub | 2010/10/24 09:14 | 성공회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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