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한 양식 our daily bread(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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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에 보았던 [일용한 양식]이라는 다큐멘터리 중 일부다. 나래이션도 없고 배경음악도 없이 소위 공장형 사육을 당하는 가축과 채소들을 묵묵히 담아낸다. 청결하고 조용하며(비명조차 허락되지않는) 질서정연하지만 동시에 섬뜩하고 충격적인 영상들이다. 동물로서의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상품으로서의 처리공정이 되었다. 최근의 광우병 논란을 보면서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럼 광우병 없는 소는 막 잡아먹어도 되나'이다. 소위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대살육 deadly feast은 과연 정당한가하는 물음이다. 그래서 고미숙씨의 경향신문에서의 글은  가슴을 때린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체하는 것인가? 다들 감지하고 있듯이, 광우병은 근대 육식문명의 산물이다. 여기서 육식문명이란 단순히 고기를 먹느냐 안 먹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자본의 증식, 미각의 탐욕을 위해 동물들을 마치 통조림처럼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더 이상 잔혹하고 더 이상 비열할 수 없는 문명의 배치를 의미한다. 광우병은 그 문명의 오만과 탐욕이 불러온 재앙의 결정판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를 넘나든다는 초유의 속성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 쇠고기를 만드는 소들은 ‘동물’로 취급된 적이 없다.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오직 항생제와 동물사료로 사육당하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존재가 어떻게 동물인가? 그것은 오직 인간을 위한 존재로 태어나고 죽을 뿐이다. 그러니 그들의 질병이 인간에게 건너오는 건 실로 당연한 이치 아닌가?]

주낙현 신부님이 소개하신 영국성공회가 작성한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교회의 비젼에 대한 보고서'인  Sharing God's Planet 은 우리에게 이 피할 수 없는 윤리적/신학적 물음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머릿말에서 캔터베리대주교는 metanoia를 언급하면서 단순히 '참회 혹은 회개repentance'로써가 아닌 지각의 전환change of perception으로서 창조된 모든 것들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하며 세계와의 오래된 친교communion을 다시 이루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 땅위에 발딛고 뿌리내린 모든 것들이 신의 보시기 좋았던 창조물로써, 높으신 분의 사랑안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by yellowsub | 2008/05/13 17:50 | 성공회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나무공방





몇 주 전부터 나무공방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방주인님은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 카팬터리가 좋아서 진로를 바꿔 지금까지 운영한 목공맨이다. 무엇보다도 공간이나 장비가 잘 갖춰진 작업터라 시간날 때마다 들른다. 처음으로 성원이를 위해 토이박스를 만들고 있다. 오늘 기름칠을 했으니 며칠동안 몇 번을 칠하면 다 완성될것이다. 다음엔 책상이나 선반을... 더 나중에 실력이 나아지면 교회 세례대를 만들어 봉헌해 볼까한다. (물론 잘 만들어졌을 경우에 말이다.) 힘은 들지만 뭔가 만져지는 것들을 만드는 보람이 있고 몸에 베어지는 나무톱밥 냄새도 나쁘지 않다. 여하튼 수지에 이사 온 후로 수지가 좋아진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by yellowsub | 2008/03/30 01:05 | 섬들... | 트랙백 | 덧글(3)

Home Sweet Home_ American Armed Home





 Kyle Cassidy의 Armed Home이라는 사진 프로젝트이다. 이미 사진집은 2007년에 아마존에서 2007최고의 책100안에 선정되기도 한 모양이다. 어쨌든 늦게나마 최근에 내가 본 사진 프로젝트 중에 최고다. Why do you own the gun?이라는 질문으로 2년간 미국의 총기소지 가정에 대한 다큐멘트였다는데 그것이 가족사진들로서건 혹은 Self Portrait이건 총기를 소지하게 된 여러 이유들(단지 안전만을 위한 이유이상의)과 함께 총과 가정, 집이라는 대비가 만들어내는 모호성이 프로젝트를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라. 총을 들었다고 흥분되었거나 긴장한 표정이 아니다. 같이 놓여진 그들의 생활가전과 가구들 처럼 아니면 키우는 개처럼 총은 그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뒤에 놓여진 십자가나 컬트적 그루들의 그림들을 보라. 총을 빼고 디즈니 캐릭터 인형을 놓아뒀다고 생각해보아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총기가 우리에게 주는 긴장도 없다. 채팅하는 무심한 딸이나 태연하게 권총을 걸쳐놓고 마치 당장 커피라도 한 잔 하려고 하는 여동생의 모습. 그들에게 맨날 주머니 속에서 주물럭 거리는 핸드폰처럼 패티쉬적 대상인지도 모르겠다.

조지아텍 총기사고를 다룬 총기소재의 찬반논란에 대한 보도사진이나 자동소총을 든 르완다의 어느 어린 반군의 사진들과는 다른 접근이 혹 이분법적 문제의식의 은폐화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안에 내재되고 잠재된 총으로 상징되는 다양한 욕망의 상징을 탈은폐시키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 다시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총을 가지게 된다면? 아니면 당신은 왜 총을 가지려고 하는가? 우리는 총대신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다른 가족들의 사진

by yellowsub | 2008/03/29 12:32 | 섬들... | 트랙백 | 덧글(0)

Saint Francois de Molitor Church 파리 몰리토 프랑소와 성당


천주교 파리교구의 의뢰로 파리의 몰리토가에 2005년 3월 세워졌다. 건축가는 Corinne Callie와 Jean-Marie Duthilleul이다. 1942년에 세워졌던 이전 교회건물을 없애고 450여 좌석 규모로 거의 새로 지어졌다. 보는 바와같이 외부 정원과 내부의 전례공간을 연결하는 반투명의 유리벽이 세워져있다. 건축가의 의도는 외부의 정원을 에덴으로, 내부를 예루살렘(도시)의 관계로 설정하여 성서에서처럼 에덴으로부터의 시작과 천상 도시로 맺음하는 예루살렘을 그리려고 하였다. 이것은 또한 교회성인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두 장소였던 도시와 정원을 상기시킨다. 거리의 나무처럼 정원배경과 함께 전면에 배치된 십자가는 자연속에서 모든 신의 창조물을 형제자매로 불렀던 프란체스코성인의 마음을 읽으려고 한다. 내외부의 하얀색 바닥 대리석과 벽면석재는 정원에서 들어오는 빛을 정화하고 주변에 이웃한 건물들과의 조화를 꾀함과 동시에 성지로서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십자가로 부터 곡선형의 벽을 따라 정렬되어 말씀이 선포되는독경대(lectern), 설교대(pulpit)와 제대를 지나 더 나아가 입구 앞에서 새로운 공동체로의 환영과 새로운 부활을 상징하는 세례대(baptisimal font)까지의 배치일 것이다. 입구부분의 나르텍스(원문에서는 portico) 또한 거리의 북적거림에서 한걸음 떠나와 성스럽게 속삭이는 기도소리로 이동하도록 새심하게 의도되었으며 벽안의 동굴 채플들은 그리스도의 우리 곁에서의 삶과 죽음를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다. 단차를 두어 상승하는 제대(altar) 주변과 신자석(nave)은 교회의 에반젤리컬한 의미구조의 핵심으로 배를 상징하듯 혹은 두 손으로 담아내는 것 같은 형태적인 배치상징을 담고 있다. 아래 링크에 세례대 주변과 채플사진을 추가한다.


[대충번역 및 부언, 사진발췌 from The Sourcebook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Collins Design)


다른 사진들

by yellowsub | 2008/03/25 14:26 | 교회건축이야기 | 트랙백(1) | 덧글(7)

부활절날 분당교회

 
매번 남의 교회건물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다 드디어 우리 분당교회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마침 간판정비를 위한 조사를 위해서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다른 많은 열악한 개교회의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크게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없다. 오늘 부활절 감사성찬례와 같은 경우처럼 70-80 여분이 되는 교우들이 참석할 경우는  발 디딜 틈없이 들어찰 정도로 작으며 예배가 끝나 애찬을 위해서는 부산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식사대형을 만드느라 혼잡하다. 내부의 기둥 또한 전례기준으로 볼 때 심각한 시선과 동선의 부조화를 가져다 준다. (내부사진은 분당교회 홈페이지 갤러리를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청소년을 위한 교육공간은 주말마다 신부님이 계신 공간과 섞여서 사제관을 빌려 쓰고 있다. 최근 몇 년사이에 또 다른 교회부지 혹은 건물임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전이나 건축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당분간 이 공간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 동안 교회내부의 제단 교체공사와 교회 앞 나무를 제거하였고 최근 교회창립기념일이 가까와 지면서 교회건물과 맞지않게 걸치된 교회간판을 교체하여 새로운 입체간판과 외부안내간판을 정비하는 것이 시급한 사안으로 추진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큰 간판이 의외로 가까이에서 잘 인지되기 힘들 뿐 아니라 흉칙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 전 교회건물에 붙어있던 것을 그대로 썼다) 오히려 건물크기에 맞게 작은 사이즈의 조명있는 간판이 더 주목받게 할 수 있다. 그것이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건물들이 보여주는 주변 지역공동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사실 저런 간판을 보고 누가 오고 싶어할까..안습이다.

모든게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처음 분당교회를 찾았을 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바로 건물의 색이었다. 먹자골목의 상업건물들 끝의 벽돌색 주택가옆의 녹색건물은 충분히 개성있는 것이었다. 난 많은 성공회 건물들이 도색이나 조명을 통해서 개성있는 색채계획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분당교회를 설명할 때 '응, 거기 녹색건물이 있잖아..거기야'하는 것이 더 기분좋게 하기때문이다. 또한 건물이 가지는 마감재를 돋보이게 할 수 있으며 종교시설로서의 의미를 강조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십자가 사인의 적절한 사용도 정말 중요하다. 분당교회는 외부에 십자가가 설치되어있지 않다. 그 이유가 예산문제등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 전체 교회 사인정비를 통해서 분명하게 교회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될 부분이다. 전에도 제기했지만 이때 관구 혹은 교구단위의 십자가 문양과 위치, 크기에 대한 지침이 있다면 유용할 것이다.

by yellowsub | 2008/03/24 00:58 | 교회건축이야기 | 트랙백 | 덧글(4)

성원이 생일날


부활절 감사성찬례를 마치고 돌아와 조촐하게 아침부터 생일케잌 노래를 불러대던 성원이를 위해 드디어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불을 붙였다 껏다 붙였다 껐다를 몇번을 해대고 또 성우를 위해서 다시 몇번을 반복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긴 촛대가 몽당초가 될 때까지... 사진 찍을 때마다 불편한 반항을 일삼던 성원이 자진해서 포즈를 취한다. 이 조촐한 축하식을 자신의 잔치로 마음껏 차지하고 싶은 모양이다. 부활절 애찬으로 배가 불렀는데 배가 터지게 케잌을 먹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농담처럼 말한다 사내아이들이 너무 먹어댄다고... 거의 이제는 일인분씩들 한다고...ㅋㅋ. 누군가 얘기했던가 사람은 먹기위해서 산다고. 단연코 또 말하고 싶지만 먹이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 모든 아버지들은... 그래서 밥상 앞에서 큰 소리쳐도 된다...오늘 나처럼... 이것들아 잘해라...ㅋㅋ

몇 장 더..

by yellowsub | 2008/03/24 00:44 | 우리 성원이와 사과... | 트랙백 | 덧글(3)

식사중


훗날 성원이 성우가 뭐가 되건 저 벽뒤에 자신들이 그려놓은 멋진 그림을 잊어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카소 그림 저리 가라다. 엄마표정도...

by yellowsub | 2008/03/23 08:08 | 우리 성원이와 사과... | 트랙백 | 덧글(1)

무서워라무서워라

by yellowsub | 2008/03/23 08:06 | 우리 성원이와 사과... | 트랙백 | 덧글(1)

뚫어져라 뚫어져라


클릭하시면 성우가 튀어나옵니다.

by yellowsub | 2008/03/04 00:21 | 우리 성원이와 사과... | 트랙백 | 덧글(3)

최근 근황

by yellowsub | 2008/03/04 00:21 | 우리 성원이와 사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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