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4월 01일
교회건물없는 교회
무작정 웹검색창에 '교회건물없는 교회'를 쳤다. 최근 10주년을 돌아보면서 분당교회건축에 대한 열의가 새롭게 대두되는 상황이고 개인적으로 다른 대안으로 교회건물이 없는 네트워크형 교회에 대한 다른 교단의 모습을 확인해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당장 '높은 뜻 숭의교회', 밥퍼공동체인 '다일교회', '분당우리교회', '너머서교회', '언덕교회', '광염교회', '주님의 교회' 등등이 있었다. 그 중에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특히 높은 뜻 숭의교회였는데 교회이름도 모여지는 장소를 빌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광성고등학교 강당을 빌리면 높은뜻 광성교회였고, 정의여고를 빌리면 높은뜻 정의교회였다. 그렇게 하늘교회, 푸른교회가 더 있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4세기초까지 초기교회가 가졌던 교회건물없는 가정교회의 역사에 대해 더 언급할려고 했지만 그만 두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미 저렇게 개신교안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고 대안적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이 외형적으로 '부흥'했으며 가난한 개척교회의 '한때'이상의 교회형태로 선택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편으론 성공회가 대안이 될 수 있을꺼다라는 생각에도 변화를 주었다. 개신교가 가진 많은 병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분명히 그 안에서 진화하고 있다. 그들의 방향이 틀렸다고 혹은 그들이 그것을 깨고 나오기 힘들거야라고 말하지만 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쫓겨나와 '길거리예배'까지 얘기하는 그들안에서 자생적으로 생길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또 다른 위선으로 덧쒸워질 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성공회모습을 통해서 그들이 바뀌진 않을거란 말이다.
성공회를 돌아보면 교회신문이던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서건 사실 아무도 교회의 대안적 모습으로 '교회건물없는 교회'를 언급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주일학교를 위해 합기도장을 빌려 매트리스에서 아이들을 뛰어놀게 했으면서도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나 보다. 대한성공회는 대성당밖에는 없다. 다들 그 성당모양을 따라 기형적인 짝퉁건물을 짓고, 빚에 허덕이고, 인테리어를 장식하면서 부동산 전문가나 독지가의 출현만을 기대하고 있다. 자랑스러운(자랑하는) 성공회적인 믿음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의 근원이 의심될 수 밖에 없다.
10주년 행사를 위해 간담회를 하고 교회어른과 돌아오는 길에 교회건물없는 교회에 대해서 말씀드렸더니 아주 긍정적으로 그런 대안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마음을 여셨다. 난 그것에서 희망을 읽는다. 그리고 하루빨리 성공회안에서 정말로 실천적이고 생산적인 교회의 모습에 대한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 분당교회가 그것에 중심이 되기를 또한 기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당교회는 돈으로 절대로(혹은 거의) 분당지역에 교회건물을 살(지을) 수 없는 조건, 아니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 by | 2009/04/01 17:03 | 교회건축이야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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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건물" 교회에 대한 생각이 우리 성공회에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전에도 이런 논의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제 사제 고시 제출 논문도 부분적으로는 그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이게 현실화되지 못하는 몇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회가 갖고 있는 "사목"과 "교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때문입니다.
프란시스는 개신교의 예를 들었는데요. 개신교-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받은-는 그런 시도의 여지가 애초에 성공회, 정교회, 천주교와 같은 전례 전통의 교회보다 넓습니다. 사람을 모아 놓고 강의하는 걸 예배로 정의하는(소위 말씀 중심이라는) (미국) "타운 홀" 형태의 공간이 그들의 신학과 더불어, 당시 미국의 이주 정착자들에게 매우 실용적이며 현실적인 형태였고, 그에 따라 발전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 점은 이른바 "공간" 혹은 "장소"의 성스러움에 대한 강조가 크지 않은 개신교 신학과도 다시 연관됩니다. 그러나 시절이 바뀌어 이 점에서 개신교 신학은 여러모로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민이 덜한 교회는 이미 돈이 많아서 실제로는 건물 전세 걱정 없는 교회들입니다.)
이에 반해서 성공회와 같은 전례 전통의 교회는 지금까지 이해해 왔던, 혹은 심어져 있던 전례와 교회당(성당)에 대한 깊은 이햬때문에, 위의 개신교의 태도들이나 적용을 이해할 수도, 시도할 수도 없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즉 "눈에 보이는 것"(건축물, 도상, 조상 등)은 항상 은총의 체화로서 "성사"(sacrament)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몸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하니까, 아무리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다고 한다 하더라도, 그 표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했습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매우 깊고 풍요로운 유산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이런 값진 전통이 그림의 떡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전세 얻어서 살아야 하고, 그 전세값에 발을 동동 구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어떤 타협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한 몫하는 것은 우리 사목 형태의 중심에 "전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생활의 핵심은 전례, 특히 주일 성찬례를 중심으로 이뤄져 있고, 오랜동안 붙박이 '돌' 제대를 두고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은 전례 전통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례가 중심이 된 사목"이라는 것이 매우 맥락적(contextual)하고 유연한 것인데도, 그 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고정된 관념 - "대성당 관념?" - 을 고집했던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한국 성공회 안에서는 "서울 대성당"만 교회고, 그 "짝퉁"들이 계속해서 건축되는 것이 바로 여기서 나온 폐해입니다. 더 큰 폐해는, 전세로 얻은 교회의 전례 공간 역시 대성당의 축소형이라는데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목의 중심인 전례가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요. 이는 전통 전례와 전통적 전례 공간을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요, 오히려 전례를 우리 사목의 살아있는 신앙 생활 중심으로 세우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요. 이 점은 몇년 전에 프란시스와 전화 통화하면서 정리한 글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http://viamedia.or.kr/2006/04/21/97 )
구체적인 사례로 넘어가 봅시다. 이곳 미국 성공회에서 경험하기로는, 건물 없는 성공회 교회 공동체들(혹은 사목)이 있습니다. 언젠가 신부님들께 소개한 적이 있던 샌프란시스코의 "그레고리 니싸" 교회도 실은 교회 건물 없이 예배 공동체로 여기저기서 모이다가, 나중에 그 전례와 공동체에 맞는 성당을 건축한 경우입니다. 아직도 건물을 갖지 않는 시도도 있습니다. 시애틀에 있는 "사도들의 교회"(www.apostoleschurch.org)가 그 예입니다. 원래 루터교 목사가 초교파교회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성공회 안에 소속되었습니다. 이들은 예배 장소로 카페나, 작은 극장, 인근 교회 건물 등을 빌려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자체 건물(교회 건축물이 아닌)을 이용하여 미사를 드리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카페 등과 같은 다른 건물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이 두 경우는 매우 다르면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통념과는 달리, 이들은 전례 전통을 매우 강조하고 있거니와, 전례 전통에 기대면서도 매우 새로운 전례를 공동체 안에서 발전시켜나갔다는 점입니다. 이런 예들이, 한국의 다른 개신교들의 사례보다는 좀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봅니다.
여전히 시도해 볼 가능성은 있습니다. 훌륭한 공간을 갖고 있지만, 전례 공간으로는 미숙한, 성공회대학교 채플은 토요일에 완전히 놀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미사가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우리 안에 있습니다. 언젠가 대학 채플을 이용해서, 토요일에 모이는 청년 교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는데, 된통 터진 적이 있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그걸 반대했던 분들이 젊고, 개혁적이고, 한편으로 복음주의적이라는 분이었다는 겁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중요한 것은 선교와 사목의 지향과 대상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의견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분당 교회의 선교 지향과 그 대상은 무엇이며 누구인가요? 이것이 우리가 짚어야 할 점입니다.
여전히 난점은 있습니다. 교회가 갖고 있는 선교 이상과 교인들의 구성, 연령, 성별 등 헤아려야 할 게 많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라면 현재처럼 분당교회가 이런 교회로 옮아가는 것보다, 분당교회가 이런 사목 공동체를 하나 세우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사정도 탈피하지 못하는데 어쩌겠는가라고 하지만, 그것은 여러 점에서 변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당교회는 지금보다 좀더 넓은 곳으로 가야하고요(건축은 어렵겠지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제가 너무 나갔나요?
귀하게 제기된 문제가 좀더 널리 토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기대합니다. 지켜볼게요.